사회적가치연구원

불안과 냉소의 시대, 가치소비가 만드는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

2026.07.03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아티클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소비한다.


우리는 한 달에 몇 개의 구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을까? 

시장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의 OTT 평균 구독 개수는 이미 2.2~2.3개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이제 구독은 더 이상 OT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선식품과 생필품은 물론 커피와 각종 생활 서비스까지 정기 구독이 일상이 되었고 통신비와 할부금, 렌탈료까지 더하면 우리는 매달 수많은 고정 지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푸념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반복되는 소비와 지출은 많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일상의 감각이 되었다.


우리는 최신 유행 콘텐츠를 구독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콘텐츠를 보고 같은 브랜드를 소비하며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각도 누린다. 하지만 그 연결은 생각보다 얕고 느슨하다. 소비는 우리를 잠시 같은 취향으로 묶어주지만, 불안과 양극화, 기후위기와 같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각자를 홀로 남겨둔다. 그래서일까. 넘쳐나는 소비와 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되고 고립된 '각자도생의 시대'에 가깝다.


불안의 시대, 소비를 연대로 바꾸는 방법


왜 우리는 이토록 열심히 소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고 불안할까?

이 고립감은 결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뉴스를 켜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치솟는 물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이미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안기는 기후위기, 그리고 언젠가 나의 일자리마저 대체 할 것처럼 다가오는 AI의 발전 소식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여기에 피로감을 더하는 정치적갈등까지 겹치면 거대한 시대의 변화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 하나 애쓴다고 세상이 바뀔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무력감과 냉소는 우리를 더욱 깊은 각자도생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거대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개인들은 결국 세상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내려 놓은 채, 당장의 편리함과 만족을 제공하는 소비 속으로 숨어든다. 소비는 불안을 잠시 잊게 해주는 피난처가 될 수 있지만 정작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질문해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를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일상의 소비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매달 반복되는 정기결제와 지출이 단순한 소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선택이 된다면 어떨까. 소비가 더 이상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운동가처럼 거창한 구호를 외치거나 혁명을 꿈꾸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소비의 순간에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거대한 무력감 속에서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 소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를 제안하는 이유다.


필자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가 운영하는 사회적경제기업 온라인 쇼핑몰 ‘함께누리’ 서비스 용역의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아왔다.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선호하는 상품부터 대중의 가치 소비를 자극하는 상품까지, 저마다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성실하게 제품을 생산하며 판로를 개척해 나가는 다양한 사회연대경제기업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현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의 이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필자는 단순한 소비 이상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사회연대경제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터에서 매일 실천되고 있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충분히 작동하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 과정은 필자에게도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나 역시 이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이제 그중 우리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천되고 있는 사회연대경제의 사례들을 공정과 환경, 지역사회, 일자리라는 키워드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공정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다. 매일 마시는 커피를 ‘아름다운커피’와 같은 공정무역 인증 기업의 제품으로 시작해 보고, 재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기업 ‘리맨’과 같이 불용 자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리퍼브 노트북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이 작은 선택만으로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생산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기후위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둘째, 지역사회의 상생을 돌보는 소비다. 지역사회에 건전하고 성실한 돌봄·가사·산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동행복한돌봄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걱정 없는 가정 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보거나, 지역 장년 여성의 일자리 창출과 친환경·건강을 모두 생각하는 ‘목화송이협동조합’의 면생리대와 패브릭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다. 우리 주변의 취약계층과 여성의 자립을 돕는 이들과 함께하는 소비는 무너져가는 지역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가장 실질적인 연대가 된다.


셋째,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구독이다. 주거 취약계층의 자립 이야기를 잡지에 담아 당사자가 직접 판매하는 ‘빅이슈코리아’를 구독해 보거나, 발달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디자이너가 함께 아름다운 굿즈를 만들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더사랑’과 같은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참여자가 직접 눈으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지출은, 단순한 소모를 넘어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마중물이 된다. 이 순간 우리의 소비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가장 촘촘하게 만드는 일종의 거대한 '가치구독'으로 완성된다.


결국 커피 한 잔을 고를 때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살펴 보는 일, 새 제품 대신 리사이클 제품을 선택하는 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이웃이 만들어가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은 모두 사회적 가치를 향한 작은 선택이다. 이러한 선택이 어쩌면 작은 소비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언어의 힘은 곧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가 되는 경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라는 단어가 여전히 낯설고 막연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본질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무심코 사용하는 생필품,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순간마다 이윤만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연대경제의 출발점이다. 물론 시작은 미미해 보일 수 있다. 나 하나의 소비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개인의 선택이 모여 만들어내는 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변화는 거창한 선언이나 혁명이 아니라, 일상 속 반복되는 선택이 쌓일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자신 내면의 변화다. 문득 일상 속에서 “이 선택을 하길 참 잘했다”는 잔잔한 만족감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출한 비용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누군가의 삶과 지역사회, 그리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효능감을 안겨준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고립된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나누고, 세상과 책임 있게 연결되는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매달 구독료를 내고 소비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모든 소비를 가치소비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현재의 시장 구조 안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우리의 모든 소비를 대체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거대한 시장경제 속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고, 우리의 다양한 소비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비의 전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소비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어차피 매달 구독료를 내고, 생필품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며 살아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소비가 계속된다면, 그중 일부만이라도 사람과 환경, 지역사회를 함께 생각하는 선택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소모시키기만 하던 지출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며, 지역사회를 살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쓰인다면 소비는 더 이상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실천이 된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이러한 선택을 하나씩 늘려 간다면 우리는 소비를 통해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거창한 구호 없이도, 특별한 희생 없이도, 반복되는 소비의 순간마다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단순히 돈을 쓴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세상에 한 표를 던졌다.”


가치소비의 힘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이어갈 때,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사회를 움직이는 데 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느냐는 곧 어떤 세상을 지지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가장 솔직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작성 : 김효원 팀장(재단법인 행복아이씨티 SI플랫폼사업팀)


출처 : [CSES] [VIEW] 불안과 냉소의 시대, 가치소비가 만드는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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