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가치연구원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 감축을 넘어 기후 기여를 말하다

2026.05.22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이슈브리프(Vol.22)의 내용을 요약하여 담고 있습니다.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은 기업이 직접 줄인 배출량이 아니라, 제품과 기술을 통해 사회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입니다. 본 이슈브리프는 회피된 배출의 개념과 측정 방식, 글로벌 정책 및 시장 활용 사례를 통해 기업의 기후 대응 패러다임이 ‘감축’에서 ‘기여’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기준선 설정, 이중 계상, 그린워싱 등의 과제를 짚으며, 회피된 배출이 미래의 투자·금융·산업 경쟁력을 설명하는 새로운 전략 지표가 될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편집자 주>



1. 들어가며: 감축 중심 기후 대응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동안 기업의 기후 대응은 주로 스코프(Scope) 1, 2, 3 배출권 인벤토리에 기반하여 "생산 과정이나 가치사슬 내부에서 온실가스를 얼마나 덜 배출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내부 탄소 배출을 관리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 효율 설비, 디지털 전환 기술 등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하여 사회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 구조를 바꾸는 '긍정적 기후 기여'를 포착하는 데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많은 기업이 도전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음에도 자체 공급망 내 감축(Scope 1~3)만으로 이를 달성하기에는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크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자사의 제품과 기술이 고객 및 사회 전반의 배출 감소에 기여하는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 대응의 초점이 '내가 얼마나 덜 배출했는가'에서 '내가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불어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디지털 제품 여권(DPP) 같은 제도의 도입은 제품 단위의 탄소 정보와 공급망 데이터 추적 가능성을 요구하며 기술과 제품 간 배출 차이에 대한 관심을 제도적으로 가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회피된 배출은 기업의 기후 역할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 회피된 배출이란 무엇인가


개념적 정의: 회피된 배출은 특정 해결책(solution)이 적용된 시나리오와 해당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았을 반사실적 상황인 '기준 시나리오(reference scenario)'를 전 생애주기 관점에서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차이를 추정한 값을 의미합니다.  


관점의 핵심: 기업이 스스로 덜 배출하는 것을 측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사의 저탄소 기술과 제품을 통해 사회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가, 즉 '사회가 덜 배출하도록 만드는 영향력'을 정량화하려는 시도입니다.  


다양한 명칭: 산업계와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기존 스코프 체계의 공백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스코프 4(Scope 4)'라고 부르거나, 제품의 탄소 발자국에 대비되는 '탄소 손자국(Carbon Handprint)', 혹은 배출의 긍정적·부정적 변화를 모두 포함하는 중립적 표현인 '비교 영향(Comparative Impact)'이라는 용어로 혼용하여 사용합니다.  


절대적 주의 사항: 회피된 배출은 스코프 1~3의 배출량을 줄이거나 상쇄(netting)하는 데 사용될 수 없으며, 두 개념은 동일한 회계 범주에 속하지 않고 서로 다른 목적과 측정 철학을 가진 별도의 보조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에어컨 모델을 통한 계산 예시: 2025년 시장에 대당 10kg-CO2를 배출하는 일반 에어컨(A사)만 존재하여 4대가 팔렸을 때 사회 전체 배출량은 40kg-CO2입니다. 2026년 대당 2kg-CO2를 배출하는 친환경 에어컨을 개발한 B사가 진입하여 기존 제품 3대를 자사 제품으로 대체시켰습니다. 이때 B사는 에어컨 3대를 판매했으므로 자체 배출량은 6kg-CO2로 증가하지만 , 사회 전체 배출량은 40kg-CO2에서 16kg-CO2로 감소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B사는 자체 배출량은 늘었으나 자사 제품 덕분에 사회 전체적으로 24kg-CO2의 배출량을 줄였으며, 이 격차가 바로 B사가 만들어낸 '회피 배출량'이 됩니다.  


3. 회피된 배출은 어떻게 측정하는가


1단계. 기준 시나리오 설정: 기업의 친환경 제품이나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게 채택되었을 대안을 설정하는 과정으로, 기준 설정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므로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가정이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2단계. 실제 배출량 측정: 기업의 저탄소 제품·서비스·기술이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원료 채취부터 제조,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Life Cycle)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화하여 측정합니다.  

3단계. 회피된 배출 계산: 기준 시나리오의 배출량에서 실제 배출량을 차감하여 산정하며, 이후 해당 제품이나 기술의 실제 시장 점유율, 보급 규모, 적용 범위를 반영해 최종 수치를 조정합니다.  


귀인적 접근법 (Attributional Approach): 특정 제품과 대조군 제품의 전 생애주기 배출량을 각각 계산하여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제품 단위의 정적(static) 비교에 가깝고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기업 포트폴리오 평가나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기 용이합니다.  

결과적 접근법 (Consequential Approach): 특정 제품이나 기술의 도입이 시장과 시스템 전반에 불러오는 동적인 변화(타 제품 생산 감소, 소비자 행동 변화 등)까지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분석 범위가 넓고 데이터 요구 수준이 높지만 정책 평가나 시스템 전환 분석에 더 적합합니다.


4. 글로벌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 개념의 태동과 발전: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기술이 사회 전반의 배출량을 줄인다는 잠재력 논의에서 출발하여 제품 단위 전과정평가(LCA) 표준이 정립되었고 , 2010년대 초반부터는 화학산업 등을 중심으로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 감소 효과를 정량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습니다.  
  • 전략적 지지와 연계: 2020년 이후에는 혁신 및 넷제로 전략과 결합하면서 넷제로 이니셔티브, 미션이노베이션 등의 평가 틀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 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회의에서도 기업 차원의 보고 필요성에 대해 정치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 정책 지표로의 확장: 최근에는 2025년 WBCSD의 실무 가이드 개정과 더불어 투자자·금융기관을 위한 가이드가 등장했고 , 유럽연합의 혁신기금(Innovation Fund)과 같은 정책 도구에서도 활용되며 투자·정책 의사결정의 참고 지표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 신뢰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과제: 엄격한 기준 없이 사용될 경우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의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으며 , 기준선(baseline) 설정의 모호함 , 시스템 경계 설정 및 리바운드 효과 고려 , 동일한 감축 효과를 여러 기업이 동시에 주장하는 이중 계상 위험 등의 제도적·기술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5. 회피된 배출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 기업 커뮤니케이션과 평판 관리: 수치에 기반한 기후 기여의 정량적 근거로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나 IR 자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개되며 ,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무형 자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차별화 요소로 작용합니다. 지멘스(Siemens)의 경우 '고객회피배출량(CAE)' 개념을 도입하여 자사 기술이 에너지 효율, 재생에너지 통합, 전기화 부문에서 고객의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 매년 정량적으로 공개하며 전략적 설득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 투자 평가 및 자원 배분: 제품이 시장에 확산할 경우 사회 전체에서 얼마나 큰 감축 잠재력을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투자자에게는 장기적 탈탄소 전환의 판단 근거를 제공하고 , 내부적으로는 R&D 과제나 신사업 포트폴리오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의사결정 도구로 활용됩니다. 미국 ARPA-E의 HESTIA 프로그램은 탄소를 흡수·저장하는 건축 기술 개발 과제 선정 시, 기준 시나리오 대비 기술이 얼마나 많은 배출을 회피·저장할 수 있는지를 핵심 성과 지표로 삼아 공공 R&D 자금 배분의 실질적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정부 및 조달 시장에서의 반영: 유럽 위원회의 유럽연합 혁신기금(EU Innovation Fund)은 프로젝트 평가 시 기준 시나리오 대비 온실가스 회피 잠재량(최대 12점)을 핵심 심사 항목으로 점수화합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정책금융 및 보조금 평가 반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2025년 녹색구매법 개정을 통해 감축 효과가 명확한 제품을 정부가 우선 구매하는 구조를 도입했으며 , 미국 연방정부의 바이클린(Buy Clean) 정책은 인프라 건설 자재 조달 시 산업 평균 배출량(기준선)보다 낮은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규정하여 회피된 배출의 격차를 정책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 시장 거래 및 자산화 시도: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배출을 사전에 회피한 감축 활동에 크레딧을 발행하고 거래하려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산림파괴 방지 감축사업(REDD+)이 기준선 과대 설정이나 누출 문제로 신뢰성에 타격을 입자 , 최근에는 국가나 주 단위 행정구역 전체를 상시 모니터링하여 공공정책의 개입 효과를 기준 시나리오와 비교해 산정하는 Jurisdictional REDD+(J-REDD+) 접근이 등장하며 엄격한 측정·검증(MRV) 체계를 갖춘 고품질 회피 크레딧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추세입니다.  


6. 회피된 배출 활용을 위한 핵심 원칙은 무엇인가


  • 성과 정의와 공시 원칙: 주요 탄소 감축 이니셔티브(SBTi, ISO 등)의 권고에 따라 회피된 배출을 스코프 1~3 인벤토리 감축 성과와 명확히 구분하여 별도의 보조 지표로 정의해야 하며 , 산정 방법, 가정, 적용 범위를 함께 투명하게 공개하여 그린워싱 논란을 방지해야 합니다.  
  • 기여의 귀속과 이중 계상 관리: 가치사슬 내의 여러 주체(부품사, 완제품 제조사, 사용자 등)가 동일한 감축 성과를 동시에 자사의 기여로 주장하여 중복 계산하는 이중 계상 문제가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므로 , 이를 방지하고 기여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내부 기준과 공개 원칙을 마련해야 합니다. 
  •  활용 목적과 적용 범위의 명확화: 스코프 감축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환 금융 및 녹색금융 스토리라인 지원, R&D 우선순위 선정,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등 미래 전환 기여 잠재력을 설명하는 전망형(forward-looking) 지표 고유의 목적과 전략·투자·설명 영역에서 활용해야 합니다.  
  • 측정·검증 체계의 구축: 단순히 숫자를 크게 부풀려 제시하기보다 기준선(baseline) 설정 방식, 사용 데이터, 계산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공개하고 독립적인 제3자 검증을 거침으로써 산정 결과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회피된 배출은 '얼마나 크게 제시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증명했는가'가 신뢰를 좌우합니다.  


7. 나가며: 회피된 배출은 어디로 가는가


회피된 배출이 공식 탄소 회계 범주로 편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 그 영향력은 녹색 분류체계(Green Taxonomy), 전환 금융, 공공 조달 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과 자본 배분의 판단 기준으로 연결되면서 회계 바깥에서 더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이자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에 있어, 국내 기업이 공급하는 소재·부품·장비가 글로벌 고객의 배출을 얼마나 줄이는지를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ESG 서사를 넘어 미래 산업 경쟁력의 실질적 원천이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숫자를 무리하게 키우는 일보다 정교한 검증 체계를 다져 시장의 신뢰를 쌓아나가는 의도적인 선택과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감축의 시대가 기업에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대였다면, 기여의 시대는 기업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입니다. 회피된 배출은 바로 그 전환점에서 기업이 '얼마를 줄였는가'가 아니라 자사의 혁신을 통해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강력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작성 : 정아름 V-lab 실장, 정다교 책임연구원(사회적가치연구원)


원문 [CSES 연구보고서] 회피된 배출(Avoided Emissions): 감축을 넘어 기후 기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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