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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AC Column] 전환의 시대, 크로스보더 컴퍼니의 접붙이기(Grafting) 전략

2026.04.28

1. 전환의 시대, 다시 떠오른 질문

요즘 창업가들을 만나면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경계 밖으로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느끼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고금리의 여진, 환율 변동성, 투자 시장의 경색, 소비 둔화, 미·중 경제 블록화의 장기화,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 위축까지 한국 경제를 둘러싼 거시적 변화 속에서 임팩트 생태계 안에서도 지속가능성과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자유로운 시장과 열린 세계가 닫혀가면서 이제 우리 기업들은 스스로 국경 안에 머물거나 나아가는 곳에서 그 나라 기업으로서 자리잡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기술과 정보,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국가 간의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는 시대, 개별 주권 국가의 정책과 대응이 무력해지는 시대, 바야흐로 전환의 시대 우리 기업들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전환의 시대, 우리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두 나라 이상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크로스보더 컴퍼니(Cross-Border Company)’가 되어야 한다. 외국회사가 아닌 그 나라 회사로서의 법적 실질과 성격을 가지고, 기존의 뿌리에서 나아가는 가지가 아닌 새로운 뿌리를 새 땅에 내릴 수 있어야 한다. 

2. 크로스보더 컴퍼니란, ‘그 나라에서 그 나라의 회사가 되는 것’

크로스보더 컴퍼니는, 두 나라 이상에서 각 나라의 회사로서 운영되면서도 하나의 통합적인 경영 전략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회사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한국회사지만, 미국에서는 미국회사로서 경영하고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도 통합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바라 크로스보더 컴퍼니라고 할 수 있다. 크로스보더 컴퍼니를 만들어가려면 전체 회사를 통합하는 모회사  또는 지주회사를 어디에 어떤 구조로 둘 것인지, 핵심 IP를 어느 관할에 귀속시킬 것인지, 이전가격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핵심 인력의 비자·보상·스톡옵션을 어떻게 엮을 것인지, 한국 모회사와 미국 자회사 간 거버넌스를 어떻게 이중으로 작동시킬 것인지 — 이 모든 층위가 처음부터 하나의 설계도 위에 놓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의 궁극적 목표는 단 하나, 그 나라에서 그 나라의 회사로 받아들여지면서 내부적으로는 하나의 회사로서 운영될 수 있는 통합적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3. 신뢰자본의 부재라는 본질적 장벽 

하지만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것 만으로 진정 미국 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생태계와 땅에 뿌리를 내린 기업이 곧 미국 회사다. 한국에서의 평판, 한국에서의 네트워크, 한국에서 쌓은 시장 이해는 대부분 미국 현지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새롭게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더라도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기업의 신뢰자본이 바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신뢰자본(Social Capital)은 세 가지 층으로 구성된다.

  정보(Information): 그 시장의 메커니즘, 규제의 행간, 비공식 관행에 대한 누적된 이해

  신뢰(Trust): 검증된 평판, 오랜 시간 약속을 지켜 온 이력

  네트워크(Network):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결정권자에게 닿을 수 있는 관계망

이 세 가지는 모두 현지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만 쌓을 수 있는 자본이다. 그리고 단독으로 진출한 외국 기업이 처음부터 이 셋을 쌓으려면 통상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자원은 소진되고, 기회는 닫히고, 본사의 인내심은 한계에 부딪힌다. 신뢰자본은 해외로 나아간 우리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토양과 같은 것이다. 

4. 그래프팅(Grafting), 시간을 압축하는 전략

신뢰자본을 빠르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미 신뢰자본을 구축한 회사와의 결합을 통한 해외진출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일명 그래프팅(Grafting), 접붙이기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그래프팅은 두 식물을 결합하는 기술이다. 토양과 기후에 적응한 강한 이미 뿌리내린 나무에 우리가 거두고자 하는 좋은 열매를 맺는 줄기를 접붙인다. 결합된 새 식물은 처음부터 그 토양의 일원으로 자란다. 뿌리는 이미 단단히 박혀 있고, 줄기는 새로운 결실을 약속한다.

대륙 간 작물 이동에서 그래프팅이 활용된 것처럼, 크로스보더 컴퍼니도 그래프팅 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줄기: 한국 기업이 가진 기술, 비전, 자본,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차별성

  현지의 뿌리: 그 시장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업이 보유한 신뢰자본 — 시장 접근권, 규제 이해, 인재풀, 고객 관계, 네트워크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우리는 진출 첫날부터 0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상대 기업이 이미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쌓아 둔 신뢰자본 위에서 출발한다. 시장 진입에 들어가는 시간 비용을 압축하고, 자본의 소진을 줄이며, 무엇보다 처음부터 ‘그 나라의 회사’라는 정체성을 일정 부분 확보하게 된다.

단독 진출과 그래프팅은 본질적으로 다른 길이다. 전자가 황무지에 새로 씨를 뿌리는 일이라면, 후자는 이미 뿌리가 단단한 나무 위에 우리의 가지를 접붙이는 일이다. 전환의 시대, 한국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전략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5. M&A, 그래프팅의 수단

그래프팅의 구체적인 실행은, M&A 방식을 통해 구현된다. 대상회사에 대한 인수, 대상회사와 공동으로 Joint Venture 설립, 대상회사 영업 양수도 등을 통해 진출 기업은 각 산업과 회사의 특성에 부합하는 그래프팅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M&A는 통상 Exit의 수단으로 인식되지만, 이처럼 새로운 지역, 영역으로의 진출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M&A를 실행하는 것은 실행 주체의 고도의 인수 대상 선별 및 통합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적합한 대상의 발굴

우리의 고객사도 경쟁사도 협력사도 결국 현지 기업이다. 따라서 해외로 나아가고자 하는 기업은 진출하고자 하는 지역과 산업 영역의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의 제품·서비스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리적 시장에 그 회사가 자리 잡고 있는지, 가치사슬상 보완적인 위치에 있는지, 고객 세그먼트가 우리의 다음 단계와 연결되는지를 봐야 한다. 임팩트 기업이라면 여기에 더해 미션과 거버넌스, 이해관계자 구성의 정합성까지 확인해야 한다. 규모와 단계의 정합성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 체급을 한참 넘는 인수는 통합 단계에서 거의 예외 없이 좌초한다.


둘째, 인수 이후의 통합적 운영(Post-Merger Integration, PMI)

거래의 진짜 가치는 클로징이 아니라 그 이후 2~3년에 결정된다. 거버넌스 통합, 핵심 인재 유지(retention), 보상 체계 정합화, 정보 시스템 통합 승계 같은 법무·세무 이슈, 그리고 가장 중요한 — 두 조직의 정체성을 하나의 크로스보더 컴퍼니로 재구성하는 작업. 이 통합은 법무·회계의 영역을 훨씬 넘어 조직 문화와 스토리텔링의 영역까지 닿는다. PMI를 가볍게 여긴 거래는 대부분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이 글로벌 M&A 시장의 오랜 경험칙이다.

요 컨대 그래프팅으로서의 M&A는 올바른 뿌리를 고르는 일(딜 소싱·실사)과 두 식물이 한 몸으로 자라게 하는 일(PMI), 이 두 축이 함께 갖추어질 때만 성립한다.

6. 마치며

 미국과 같이 큰 자본 시장과 높은 비용이 소요되는 시장에서는 사업운영에 있어서의 시간당 비용이 한국에 비해 최소 3배에서 5배 소요된다. 따라서 마치 잠수 전 미리 현장의 수심과 지형을 확인한 것처럼 본격적인 진출에 앞서서 현지에 대한 정보와 신뢰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특히나 고객, 경쟁사, 협력사, 현지 시장 지형에 대한 정확한 사전 탐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프팅 전략과 그 실행의 성과는 사실 그 전에 얼마나 해당 지역, 시장, 기업에 대한 정보 파악이 충실하게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담대한 도전에는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바다로 나아감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바다에서 살아남는 것에는 지혜가 필요하기 떄문이다.


기고 : 법무법인 미션 김성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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