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가치로 바꾸는 기술] 장애의 벽을 넘은 연결의 가치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콘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2020년 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된 보고서 “The role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achiev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따르면 AI 기술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전체 세부 목표의 79%에 해당하는 134개 목표 달성을 촉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보건, 교육, 평등을 아우르는 ‘사회(Society)’ 영역에서는 전체 타겟의 82%(67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술의 역할을 다시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은 단순히 개인의 삶을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 그동안 해결이 어려웠던 문제 자체에 개입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학습된 무기력’을 완화하는 계기를 제공할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를 가치로 바꾸는 기술] 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사회 곳곳에 단절과 격차를 완화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술이 만연한 학습된 무기력을 어떻게 덜어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여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단절인 ‘장애’와 AI 기술을 중심으로 탐색해봅니다.

1. 모두를 연결하는 기술: 포용적 AI의 등장
최근 KAIST에서 재학생 창업가 정인서가 ‘포용적 AI 인재 양성’을 위해 10억 원을 기부한 사례¹는, AI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줍니다. 해당 기부금은 장애인과 기술 취약계층도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연구 프로그램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여기서 ‘포용적 AI(Inclusive AI)’란 연령, 장애, 소득, 지역 등 다양한 조건으로 인해 기술 접근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개발·활용되는 인공지능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접근성 개선을 넘어, 소외되었던 집단의 잠재력과 역량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025년 2월 파리에서 열린 AI Action Summit에는 프랑스, EU 중국, 인도 등 60여 개 국가가 참여해 ‘사람과 지구를 위한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AI에 관한 선언문(Statement on Inclusive and Sustainable Artificial Intelligence for People and the Planet)’을 공동 채택했습니다. 특히 이 선언은 단순한 원칙 제시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을 기반으로 AI의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에 기여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²
이제 AI 기술은 신체적·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사회와 단절되었던 개인을 다시 연결하는 공동체 회복의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 현장을 연결하는 혁신: 사회적 기업 사례
사회적 기업들은 포용적 AI를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며,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투아트(Tuat): 시각 보조 서비스 ‘설리번’
전 세계 200여개국에서 사용 중이며 다운로드 이용자는 48만 명에 이르는 설리번 서비스는 단순히 사물의 이름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주변 환경의 문맥을 해석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컴퓨터가 이미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술인 Vision AI를 기반으로 구현됩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식당의 메뉴판을 읽어주는 것을 넘어, 영수증에서 결제 금액과 품목을 정확히 추출하고, 약봉투에 기재된 복잡한 복용 주의사항을 음성으로 안내합니다.
출처https://news.sktelecom.com/177245
특히 주목할 점은, 인공지능이 대화 상대의 표정, 연령대, 감정을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겪었던 정서적 단절을 완화하고, 보다 주체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라젠(Lagen): 인공지능 기반 수어 통번역 서비스 '소리와(SORIWA)'
농인에게 수어는 단순한 의사표현 수단이 아니라, 표정과 상체 움직임이 결합된 ‘제1언어’입니다. 라젠은 3D 모션 캡처 기술과 딥러닝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수어의 미세한 움직임을 정밀하게 데이터화합니다. 이를 통해 AI가 수어를 텍스트, 음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청인의 음성을 농인이 이해하기 쉬운 수어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합니다. 청인과 농인의 의사소통 장벽을 낮춤으로써 농인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venturesquare.net/874841
돌봄드림(DolbomDream): AI 스마트 조끼 ‘HUGgy’
돌봄드림의 ‘HUGgy’는 센서를 통해 착용자의 심박수와 피부 전도도 등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합니다. 발달장애인이나 치매 환자가 겪는 급격한 불안 증세는 외부에서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AI가 스트레스 지수의 급격한 변화를 감지하면, 조끼 내부에 공기를 주입해 신체를 부드럽게 압박하는 ‘딥 터치 프레셔(Deep Touch Pressure)’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정서적 변화를 데이터 기반으로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안전을 동시에 지원합니다.
출처 http://dolbomdream.gloriasnd.kr/en/doc/products.php/carearly
임상 시험 결과, 조끼 착용 후 발달장애 아동의 수업 참여도는 28% 증가하고 스트레스 지수는 57%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보조 기술을 넘어, 그동안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던 불안 상황에 기술이 직접 개입해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3. 구조를 연결하는 확장: 국내 기업 사례
국내 기업은 소셜벤처의 기술을 자사 인프라와 결합하거나,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 등 포용적 AI의 사회적 임팩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SKT : AI 시각 보조기기 설리번 Eye
‘설리번 Eye’는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의 일상적 이동과 정보 인식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디바이스입니다. 이미지 묘사, 문서 인식, 얼굴 인식, 보행 지원 등 투아트의 ‘설리번 플러스’ 기능을 기반으로 합니다.
SKT는 2021년부터 투아트와 협업을 진행하며, 설리번플러스에 음성 AI ‘누구(NUGU)’와 비전 AI(Vision AI)를 더했습니다. 음성인식 AI와 텍스트를 다양한 형태로 인식해 인간처럼 사고하는 SKT의 멀티모달 AI(A.X)를 적용하며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해왔습니다.
사용자는 단순 명령이 아닌 일상 대화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미지·문서 인식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맥락적으로 설명받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방대한 이미지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상황에 더욱 근접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환경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SKT : 비전 AI 돌봄 솔루션 ‘CareVia’
‘CareVia’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비전 AI로 분석·기록하는 돌봄 솔루션입니다. CCTV 영상을 기반으로 자해, 타해와 같은 9가지 위험 행동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이를 데이터화하여 보다 정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기존에 행동치료사가 수기로 기록하던 방식과 달리, AI 기술이 도전적 행동의 빈도와 패턴을 분석하고 행동 전후의 맥락을 함께 기록합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행동치료사가 행동을 유발한 요인을 파악하고, 개별 맞춤형 중재 계획을 수립해 교육에 적용함으로써 반복되는 행동을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록 작업 시간을 기존 동일 환경 대비 최대 90% 단축하고 돌봄 서비스의 연속성과 품질을 높였습니다.
2025년 12월 기준 서울, 대전, 대구, 경기 등 전국 12개 발달장애인 돌봄 시설에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으며³, 이는 돌봄 영역에서의 경험과 판단을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네이버 : AI 커뮤니케이션 중재 시스템 액세스톡(AACessTalk)
‘AACessTalk’는 소리를 내기 어렵거나 단어 중심의 제한된 표현을 사용하는 자폐 아동과 부모 간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AI 기반 커뮤니케이션 중재 시스템입니다.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대화 자체를 설계하고 확장합니다.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부모와 아이의 대화 맥락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부모에게 적절한 질문이나 반응을 제안하는 ‘AI 대화 가이드(Parent Guide)’ 기능을 제공합니다. 동시에 아동의 관심사와 현재 상황을 반영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 기반 어휘 카드를 추천하는 ‘Child Card’ 기능을 통해, 아동이 보다 능동적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실제 적용 결과, 부모-자녀 간 상호작용에서 아동의 자발적 표현 빈도와 대화 지속 시간이 증가하고, 기존의 요구 중심 대화는 감정과 일상을 공유하는 정서적 대화로 확장되는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해당 연구는 ACM CHI 2025에서 상위 1%에게 수여되는 최우수 논문상(Best Paper Award)을 수상하며 기술적 완성도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았습니다.
4. 세계를 연결하는 흐름: 글로벌 포용 기술
포용적 AI는 더 이상 특정 국가나 조직의 실험적 시도가 아니라, 글로벌 기술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엔비디아(NVIDIA) : 수어 학습 AI 플랫폼 SignS
2025년 2월 엔비디아가 미국농아인자녀협회(American Society for Deaf Children) 등과 협력하여 인공지능(AI) 기반의 미국수어(ASL) 교육 플랫폼 ‘SignS’를 발표했습니다. 이 플랫폼은 검증된 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자가 3D 아바타를 통해 수어를 학습하고 웹캠과 AI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동작에 대한 실시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현재 약 100개의 기본 수어 학습이 가능하며, 향후에는 얼굴 표정과 머리 움직임 등 비수지 신호(Non-manual signals)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기능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또한 수어 사용자와 통역사의 검증을 거친 1,000개의 수어 단어와 40만 개 이상의 영상 데이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청인 부모와 농아 아동 간 언어 습득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단절을 완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나아가 구축된 데이터셋을 공개함으로써 디지털 휴먼과 AI 에이전트 등 다양한 접근성 기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구글(Google) : 접근성 AI 앱 ‘Lookout’ & ‘Look to Speak’
Google이 선보인 ‘Lookout’과 ‘Look to Speak’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AI 기반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출처 Google
‘Lookout’은 Vision AI 기술을 활용해 저시력자와 시각장애인의 환경 인식을 돕는 서비스입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주변으로 이동시키면 좌석, 출입구, 욕실 등 공간의 위치와 방향을 안내하고, 촬영된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해 주변 상황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편 ‘Look to Speak’는 전면 카메라의 시선 추적 기술을 기반으로, 언어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사용자는 눈의 움직임만으로 화면에 제시된 문구나 이미지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된 내용은 음성으로 변환되어 전달됩니다.
5. 포용을 설계하는 기술, AI의 미래
지금까지 우리는 국내 소셜벤처부터 국내 기업, 그리고 글로벌 기업의 사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흐름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AI는 단순히 ‘장애의 벽을 넘는 기술’이 아니라, 그 벽을 허물고 서로를 다시 연결하는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AI는 이제 성능 경쟁을 넘어, 사회적 신뢰와 통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장애를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바라보며,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해온 수많은 벽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술이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그 벽은 더 이상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